
걸프 전쟁 (1990-1991)
전쟁 이전: 어니스트 윌 작전
미주리호 전함은 1986년에 재취역을 위해 예비 상태에서 다시 투입되었습니다. 1986년과 1987년, 이란으로 향하는 유조선들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자, 미주리호는 미국 국기를 단 쿠웨이트 유조선들을 호위하기 위해 북아라비아해로 파견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어니스트 윌(Operation Earnest Will)’로 명명되었습니다. 10월 11일부터 12일까지, 미주리호는 오만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첫 호위 호송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사막 방패 작전 / 사막 폭풍 작전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사막 방패 작전(Operation Desert Shield)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쿠웨이트 침공 후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쿠웨이트, 미국, 영국,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연합군이 지역에 집결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1990년 11월 29일, 유엔은 결의안 678호를 채택하여 이라크군에게 1991년 1월 17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철수 기한이 지나도 이라크군은 물러나지 않았고, 방어적 성격의 사막 방패 작전은 전투적 사막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미주리호는 1991년 초 중동에 도착했습니다. 페르시아만에서의 첫 임무는 1월 9일 폭발물 처리반(EOD)이 지뢰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1월 8일부터 15일까지 미주리호는 페르시아만에서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월 17일, 미주리호는 바그다드를 겨냥한 첫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고, 다음 날에는 13발을 더 발사했습니다. 1월 20일까지 총 28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1월 29일, 이라크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카프지 해안 도시를 점령하자, 미주리호는 증원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출동했습니다. 2월 3일, 미주리호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주포를 실전 발사했습니다. 콘크리트 지휘통제 벙커와 이라크 포병 진지를 목표로 삼아 2월 5일부터 7일까지 112발의 16인치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보병 대대, 기계화 부대, 포병 포대, 지휘 벙커를 대상으로 69발의 16인치 포탄을 발사하는 지원 사격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미주리호는 쿠웨이트 시티 북쪽으로 진격했으나, 내륙 타격을 위해 6마일 길이, 1,000야드 폭의 지뢰 제거 통로가 먼저 확보되어야 했습니다. 폭발물 처리반은 총 10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 후 이라크가 점령한 파일라카 섬을 포격했습니다.
2월 24일, 연합군은 쿠웨이트를 위한 지상전을 시작했고, 미주리호는 지상군 지원 사격을 제공했습니다. 2월 25일, 미주리호는 쿠웨이트 상륙 기습을 가장하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실크웜 미사일이 미주리호를 향해 발사되자, 영국 해군 글로스터함(HMS Gloucester)이 두 발의 씨다트(Sea Dart) 대공미사일로 이를 요격하여 해상 전투 중 최초로 적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격추했습니다. 미주리호는 이에 대응해 16인치 주포로 실크웜 발사 진지를 파괴했습니다. 연합군의 지상전은 성공적이었으며, 1991년 2월 28일 걸프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걸프 전쟁 통계
탄약 종류 | 발사된 포탄 수 |
---|---|
16인치/50구경 포 | 759 발 |
토마호크 미사일 | 28발 미사일 |
미주리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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