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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건 항복 조인식장

    1945년 9월 2일 일요일 아침, 제 2 차 세계 대전을 공식적으로 끝내기 위해 각 전쟁국가 대표들이 도쿄 만에 정박한 미주리 전함에 모였습니다. 연합국 최고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항복 조인식을 오전 09:02분에 개최했으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을 한 사람은 일본 천황 및 일본 정부를 대표했던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 였습니다. 원래 오전 09:00시에 개최 예정이었던 이 중요한 조인식의 시작이 2분 미뤄진 이유는 바로 이 시게미츠 마모루의 한쪽 다리가 없어 전함을 오르는데 어려움이 있어 지각을 했기 때문인데, 그의 한쪽 다리는 바로 윤봉길 의사가15년 전 상하이 의거에서 던진 물통 폭탄에 의해 제거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제국 총사령부를 대표하는 우메즈 요시지로 장군이 그 다음으로 서명을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일본의 항복을 수락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으며 미 해군 제독인 니미츠 제독이 미국 대표로 서명을 하게 됩니다. 이어서 중국, 영국, 소련,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델란드와 뉴질랜드가 서명함으로서 전쟁이 종결됩니다. 역사상 가장 큰 댓가를 치루고,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 종결되는 것에는 고작 23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1945년 10월에 제작된 항복 동판(명판)은 항복 서명식 테이블이 있었던 자리에 설치되었으며 무조건 항복 조인식이 이루어지는 동안의 미주리함의 좌표는 동경만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참고: 무조건 항복 조인식 장소로서 미주리함의 선택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졌고,
    트루먼의 딸은 1944년 미주리함의 진수식을 거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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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장선실 (캡틴즈 캐빈 – 항구에 정박 시)

    이 곳은 전함의 지휘관을 위한 공식적인 선실이며 휴게실 입니다. 선상에 있을 때 함장이 사용하는 세 곳의 선실 중 하나로서 나머지 두 곳의 선실은 작은 규모로 항해 중 공무를 위한 선실 입니다. 항구에 있을 때 사용하는 큰 선실은 정박 시 공식 만찬을 주최하거나 작전 회의 때 또는 수병들이 징계 조치를 받으러 소환되었을 때, 함장의 비 사법적인 징벌 시 사용 되었습니다.
    테이블에는 최대 12명까지 앉을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공식 행사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 카이스(Kaiss)함장은 현대화 된 미주리함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함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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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인치 부포

    2 연장 5 인치 부포는 대지 및 대공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약 25kg의 포탄을 점화 뇌관과 화약이 들어간 황동 또는 강철 카트리지 (무게 약 13.4 kg)를 사용하여 발사합니다.

    5인치(12.7cm) 38구경 포대 사양
    발사 속도: 포신 당 일분에 15~20발
    최대 사거리: 16km (10마일)
    최대 수직 상승 높이: 11,369m
    발사 시 필요한 인원: 2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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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A 엘리베이터

    필요 시 ADA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쿼터덱으로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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